


소다미술관은 예술을 통해 사회적 질문을 던지며 다름을 포용하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탐색해 왔습니다. 2026년 봄, 화성시의 지역적 맥락을 담아 선보이는 《모두의 성장소설: The coming of us》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를 우리 모두가 함께 통과하는 ‘성장의 여정’으로 바라봅니다.
이번 전시는 낯선 세계와 부딪히며 견고했던 편견에 균열을 내고, 그 틈 사이로 각자가 지닌 고유한 삶의 서사를 섞어내며 마침내 ‘우리’로 거듭나는 성장소설의 문법을 따릅니다.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진 이들이 한데 모여 일상을 일구는 화성시의 오늘 또한 지역 공동체 전체가 함께 써 내려가는 거대한 성장소설과 같습니다. 예술은 이제 ‘나’와 ‘너’를 넘어 ‘우리’가 공유하는 서사의 언어이자, 단절된 마음을 잇고 공존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매개가 됩니다.
《모두의 성장소설: The coming of us》는 타인의 이야기를 읽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연대의 방식을 질문하는 다정한 대화의 장입니다. 서로의 다름이 두려움이 아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역동적인 동력이 되는 순간을 이곳에서 마주하시길 바랍니다.
본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박물관협회의 지원을 받아 「2026 박물관·미술관 주간」의 <뮤지엄×즐기다>공식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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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슬기 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재현’의 속성을 전복시키며,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온 시각적 질서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빛은 인쇄되지 않는다〉는 사진의 기계적 메커니즘과 인간 인식 사이의 간극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의 비평적 시각이 집약된 작품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진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객관적 지표’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 매끈한 시각적 믿음에 의도적인 균열을 일으킵니다. 작품 속 검은 화면은 밤하늘의 심연을 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 그 안의 별빛은 그려지거나 인쇄된 것이 아닙니다. 사진 인쇄 공정에서 ‘빛’은 잉크가 닿지 않는 공백으로 남는다는 물리적 역설에 주목한 작가는, 흰 종이 대신 검은 먹을 칠한 종이를 선택함으로써 이 ‘부재하는 빛’을 역설적으로 가시화합니다.
작품은 감상자의 각도와 시선에 따라 별이 점멸하는 듯한 시각적 일루전을 선사합니다. 이는 단순히 사진을 감상하는 행위를 넘어, 우리가 대상을 단편적으로 정의하던 기존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장치가 됩니다. 인쇄된 사진 속 별은 물리적으로 비어 있지만, 그것이 지시하는 하늘 위의 별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작가는 ‘빛은 인쇄되지 않는다’는 명제를 통해, 정작 가장 중요한 본질은 눈에 보이는 색이나 가시적인 레이어로 증명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시각적 경험은 내면의 선입견을 비워내는 성찰의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각자의 빛을 잃지 않는 별들처럼, 우리 각자가 지닌 고유한 가치 또한 타인의 편견이나 사회적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존재함을 말해줍니다.
<빛은 인쇄되지 않는다>는 익숙한 풍경에서 낯선 균열을 발견하는 순간을 통해, 타인의 배경을 편견 없이 바라보기 위한 새로운 인식의 좌표를 제안합니다.

정덕현 작가는 일상의 사물과 사회적 현상을 예리하게 관찰하며, 우리가 세상을 정의하는 방식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을 던져왔습니다. 연작 <틀>은 우리가 저마다의 경험과 지식으로 구축해온 ‘시각적 프레임’을 가시화하여, 그 공고한 체계 아래 가려진 존재들을 다시 발견하도록 이끄는 작업입니다.
인간은 낯선 대상을 마주할 때 자신의 과거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부족한 정보를 채우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인지적 습성을 ‘틀’이라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치환합니다. 작품 속 정형화된 모양틀은 세상을 규정하는 고정관념이나 제도적 질서를 상징하며,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주관적 시선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틀 내부를 채운 짙은 흔적들은 작가가 명명한 ‘검은 액체사회’의 단면입니다. 이는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각자의 틀로 세상을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본질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집니다. 작가는 이 단단한 모양틀을 무작위로 배치하거나 의도적으로 어긋나게 만듦으로써 우리가 ‘정답’이라고 믿어온 시각적 질서에 균열을 일으킵니다. 이 낯선 어긋남은 관람객에게 고정된 해석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완벽해 보였던 프레임 속에 ‘틈’을 만들어냅니다.
정덕현은 강한 확신으로 세상을 정의하던 주체의 자리에서 내려와, 스스로를 낮추는 ‘객체’가 되어 대상을 바라보길 제안합니다. 나를 가두고 있던 견고한 틀을 조금만 느슨하게 풀 때, 비로소 그 틈 사이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타인의 진실된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나의 기준이 흔들리는 것은 불안이 아닌,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성숙한 성장의 과정입니다.
작품 <틀>이 만들어낸 미세한 균열 사이에서, 관람객은 내면의 선입견을 비워내고 타인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다정한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서지인 작가는 고정된 결말로서의 회화가 아닌, 시공간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자라나고 변모하는 유기적인 회화 세계를 탐구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증식하는 풍경〉은 작가가 사막의 대지 위에서 마주했던 찰나의 빛과 유랑의 기억을 신체적 감각으로 복원해낸 거대한 서사적 풍경입니다.
작가에게 붓질은 머릿속의 계산을 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길을 찾아가는 수행적 과정입니다. 작가는 찰나의 빛이 안구에 부딪히는 물리적 충격과 그 순간의 감각을 ‘팟칭(parching)’이라는 고유한 언어로 포착합니다. 화면 위에 역동적으로 뒤섞인 색채들은 박제된 이미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억의 파편들이 부딪히며 생성되는 살아있는 빛의 흐름을 상징합니다.
작가는 한 장의 완결된 캔버스에 머무르지 않고, 회화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몸’을 가질 수 있는지 실험합니다. 수백 개의 작은 패널들은 각각 독립된 개체인 동시에, 전체 풍경을 구성하는 하나의 ‘세포’로서 기능합니다. 처음에 작은 캔버스 하나로 시작된 이 여정은 현재 250여 개의 유닛으로 증식하며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이는 고정된 장면이 아니라, 관람객의 이동과 시선에 따라 끊임없이 재배열되고 확장되는 ‘회화적 생명체’에 가깝습니다.
<증식하는 풍경>이 보여주는 무한한 확장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가능성을 은유합니다. 작가는 관람객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를 단편적으로 소비하기보다, 작품 사이를 산책하며 천천히 감각을 깨워나가길 제안합니다. 무엇이 맞고 틀린지 판단하기에 앞서, 서로 다른 색과 형상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다층적인 구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라는 거대한 숲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이 마주하는 이 풍경은 멈춰있는 완성작이 아니라, 매일 새로운 경험을 쌓으며 성장해 나가는 우리들의 삶처럼 내일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과정의 한 페이지입니다. 낯설고 새로운 이 풍경 속에서 여러분 내면의 감각들이 자유롭게 깨어나는 경험을 하시길 바랍니다.

노경화 작가는 존재와 존재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온기를 시각화하며, 우리가 공유하는 ‘믿음’이 어떻게 하나의 견고한 세계를 구축하는지 탐구합니다. 작가에게 회화는 단순히 허구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타인을 향한 다정함이 실천적 의무가 되는 ‘형이상학적 공간’입니다.
노경화의 작품 속 인물들은 손끝이나 머리 위에 작은 불빛을 품고 있습니다. 이 빛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광원이 아니라, 인물의 의도적인 행위를 통해 그곳에 ‘놓인’ 것입니다. 이는 세계가 원래부터 따뜻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다정한 시선과 돌봄(Care)에 의해 비로소 밝아질 수 있다는 ‘발광의 윤리’를 상징합니다. 작가는 이러한 행위적 온기를 통해, 파편화된 개인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빛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화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씨앗, 열매, 책을 건네는 손의 제스처는 작가가 지향하는 ‘분배의 가치’를 드러냅니다. 여기서 믿음은 한 개인이 독점하는 확신이 아니라, 서로에게 끊임없이 건네지는 상태로 정의됩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가 다음 선의로 이어지는 이 연쇄의 과정은, 우리라는 존재가 서로 연결된 ‘믿음의 그물망’ 속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작가는 세계가 때로 차갑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한 곳임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다정함’은 세상을 유지하는 유일한 기술이자 우리 모두의 의무가 됩니다. 작품 속 인물과 동식물이 함께 엮어가는 이 거대한 풍경은, 나를 넘어 ‘우리’가 공유하는 믿음이 모일 때 비로소 도래할 따뜻한 미래를 예견합니다.
<사소한 매듭이 거대한 믿음을 만드는 방법> 이라는 제목처럼, 여러분이 마주하고 있는 이 다층적인 세계는 우리 각자의 작은 친절이 모여 완성된 연대의 기록입니다. 이곳에서 타인과 세상을 향한 다정한 대화를 시작하며,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갈 더 나은 세계의 가능성을 마주해 보시길 바랍니다.

소목장세미는 전통 목공 기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가구라는 매개체가 인간의 신체와 심리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작가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관람객의 수동적인 감상을 넘어, 능동적인 신체 활동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유희적 연대'의 장을 마련합니다.
전시의 시작점에 놓인 <지압 벤치>는 관람 중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쉼의 장치입니다. 작가는 전통적인 가구의 형태에 지압 돌기와 레몬그라스 향을 결합하여, 앉는 행위만으로도 신체의 긴장을 완화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는 관람객이 자신의 몸 상태를 환기하고, 작품과의 심리적 거리를 새롭게 조정하는 감각적 인터루드(Interlude)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푸스볼 테이블>은 서로 닿을 수 없는 다각형의 요소들이 하나의 공을 매개로 소통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두 명의 참가자가 마주 서서 핸들을 조절하며 벌이는 대결은, 단순한 게임을 넘어 상대방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균형을 찾아가는 역동적인 에너지의 교환을 상징합니다.
이번 공간의 핵심인 <동심협력게임>은 팀을 이룬 구성원들이 서로의 호흡을 세밀하게 조율해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작업입니다. 활 위에 공을 올리고 골인 지점까지 안전하게 옮기는 과정은, 각자의 속도를 맞추고 힘을 분배하는 '협력의 기술'을 몸소 체험하게 합니다.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여정이 되어, 관계가 형성되는 순간의 즐거운 연결감을 제공합니다.
소목장세미 작가는 세상을 규정하는 단단한 규칙 대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놀이'의 형식을 빌려 공동체의 가치를 제안합니다. 나 혼자만의 속도가 아닌 타인과의 리듬을 맞춰가는 이 경험은, 이번 전시가 지향하는 ‘다름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역동적인 동력’이 되는 순간을 가장 직관적으로 증명합니다.
작가가 마련한 이 유희적 장치들 속에서, 타인과 어우러지는 즐거운 에너지를 발견하고 함께 성장하는 공존의 감각을 만끽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생태미술가 강술생은 생명이 스스로 피어나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움’의 미학을 탐구합니다.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상처 입은 인성을 치유하기 위해, 씨앗이라는 작은 생명력을 매개로 우리 사회의 유기적인 관계망을 회화, 영상, 시민 참여형 프로젝트로 기록합니다.
미술관 야외 대지로 이어지는 〈옥수수 밭-같은 씨앗, 다른 조건〉은 지난 4월, 작가와 화성시 네팔 이주민 15인이 함께 옥수수 씨앗을 심으며 시작된 공동체 예술 프로젝트입니다. 실내의 영상 기록은 이들이 나란히 땅을 일구며 공존의 토대를 마련하던 ‘시작의 순간’을 생생하게 증명합니다.
똑같은 씨앗이라 할지라도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나는 옥수수의 생태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이 어우러지는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혼자일 때보다 곁을 나누며 자랄 때 더욱 견고해지는 옥수수의 생명력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연대의 가치를 시사합니다.
작은 동전 위에 조심스럽게 놓인 씨앗들은 생명과 가치의 최소 단위를 상징합니다. 〈시드 머니 드림〉은 사소한 씨앗이 자라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듯, 우리의 작은 마음과 실천이 모여 사회적 변화를 만드는 ‘희망의 자본’이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작가는 촬영이나 전시에 사용한 씨앗조차 반드시 흙으로 돌려보내 꽃을 피우게 하는 수행적 방식을 고수합니다. 이는 씨앗을 단순히 재료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작가만의 윤리적 태도입니다. 관람객이 직접 동전 위에 씨앗을 올리는 행위는 이러한 작가의 생명 존중 정신에 동참하는 과정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각자의 빛을 품고 있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손끝으로 마주하는 경험이 됩니다.
강술생 작가는 하루살이의 하루, 인간의 100년, 나무의 300년이라는 각기 다른 ‘찰나’의 시간들이 지구라는 긴 역사 속에서 조화롭게 공존하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현실이 절망적일지라도 씨앗이 품은 내일의 희망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작가가 예술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는 용기이자 공존의 길잡이입니다.

공공캠페이너 젤리장은 예술의 사회적 실천에 주목하며, 일상적 공간 속에서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참여형 디자인을 제안해 왔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랜덤 이웃>은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이웃’의 존재를 우연의 방식을 통해 재구성하고, 그들을 향한 다정한 시선을 회복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이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작가는 바로 이 ‘예기치 못한 마주침’이 공동체를 이루는 본질적인 속성이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무작위로 나열된 카드를 조합하는 행위는, 의도하지 않은 순간 우리 삶에 들어오는 타인을 환대하고 그들과 관계 맺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체험하게 합니다.
관람객은 게시판에 준비된 ‘수식어’와 ‘대상’ 카드를 무작위로 선택하여 자신만의 이웃을 명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하는 수많은 조합은 우리가 그동안 ‘다문화’ 혹은 ‘이웃’이라는 단어 속에 가두어 두었던 이들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이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고착화된 편견의 틀을 깨고 이웃의 존재를 새롭게 정의하는 능동적인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집니다.
자석으로 고정된 수많은 카드 조합은 관람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이 모여 완성된 ‘연대의 지도’가 됩니다. 작가는 이 게시판을 통해 오늘 우리가 새롭게 발견한 이웃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다정한 언어를 건넬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집니다.
작가가 마련한 이 느슨하고도 다정한 연결망 속에서, 타인을 향한 낯선 두려움을 거두고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가는 성장소설의 주인공으로서 서로를 마주해 보시길 바랍니다.
